2015/05/17

駅伝 ( えきでん )

 

고급 일본어 (2)  - 일본의 에키덴에 관해서

2015년 5월 23일 (토)


이 글은 저한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일본의 아사미씨가 한국어로 작문한 내용을 일본어로도 쓴 내용입니다. 아래에, 일본어와 한국어로 올렸습니다. 매년 년초 ( 1월 2,3일 )면 많은 일본 사람들이 테레비전앞에서 즐겨보는 것이 관동지방 대학의 선수들이 도쿄에서 하코네까지 220키로를 달리는 장거리 릴레이입니다. 일본어로 ‘에키덴’ 이라고 합니다. 이 에키덴이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이 글을 읽으시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일본어를 공부하시는 분들중에서, 중급(고급) 일본어를 공부하고 계시는 분들은 일본어 공부 자료로 활용해 보세요. 이 글은 일본인 아사미씨가 직접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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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駅伝   ―飛脚の精神―

1.プロローグ・・・飛脚(ひきゃく)

 日本の長距離リレーである駅伝・・・この競技についてお話しする前に、先ず、この競技の走者のモデルとなった“飛脚”について、その起源を説明したいと思います。

 駅伝は世界的には、マイナースポーツです。もちろんオリンピック種目ではありません。

しかし日本では、昔から盛大に行われている、人気がある競技なのです。これは、日本人が走ることが好きで、なおかつ団体競技を好むという国民性に因る所かも知れませんが、何よりも、この競技が日本発祥であるということが理由なのかも知れません。ならば、駅伝の期限(ルーツ)を、お話ししてみようと思います。

 駅伝は、『“駅”ごとに“伝”える』(韓国語で“역”마다“전”하다)という意味です。

何の話かと言えば、実は、日本では350年程前に、今の言葉で言えば、“郵便制度”が生まれました。つまり、お客様から預かった手紙(時には、お金の場合もあった)を、注意深く、そして確実に指定された所へ送る制度です。もちろん当時は、列車も自動車も無く、自転車さえ無かった時代です。当然、人が走って運ばなければなりませんでした。

 当時、重要な 街道には、約15キロごとに、“宿場(しゅくば)”といって、宿泊所が数多く集まっていた町があり、そこに郵便物の中継所もあり、手紙を持って走る人々が待機していました。この、手紙を運ぶ人々を、“飛脚”と呼びました。飛脚は次々に手紙をバトンリレーしながら、目的地まで送って行くのです。彼ら飛脚達には、『大切なものを運ぶ職業』というプライドがあり、雨が降る日も、雪が降る日も、暑い日も、寒い日も走り続け、使命を全うしました。300年程前には、東京(江戸)から大阪まで、5日で運んだという古文書が残っています。

2.駅伝(えきでん)

 ところで、“飛脚制度”は、鉄道が日本全国各地へと敷かれつつ、本格的なイギリス式の郵便制度が導入された、1875年頃に廃止されましたが、この飛脚制度を起源として生まれた競技が、“駅伝”です。短距離競走の場合は、バトンを受け渡ししますが、駅伝の場合は、輪になった、細く長い布を、体に掛けて走り、これを、次の走者に渡します。この布を、“襷(たすき)”と言うのですが、本来は、和服(着物)の袖を留める為に使う紐なのです。

この襷は、飛脚が運んだ手紙のように、貴重な物なので、絶対に目的地(ゴール)まで、運ば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駅伝走者にとっては、“命”のようなものなのです。

clip_image004 駅伝競技が、日本で最初(おそらく世界最初)に行われた大会は、日本の首都が、京都から東京へ遷都(せんと)されて50年目を記念して、1917年に開催された大会です。これは、京都・三条大橋(さんじょうおおはし)から、東京・上野公園(うえのこうえん)まで530kmを、24区間に分けて走る競技でしたが、多くのチームが参加しました。スタートからゴールまで3日もかかったそうです。

 その後、走る距離を短く(50~100km程度)して、各地に相次いで駅伝大会が生まれるようになりました。 県対抗・職場対抗・学校対抗・軍の部隊対抗等・・・いろいろです。(女子の競技は、かなり後年に生まれる。1980年頃)

clip_image006 そして、1920年に関東地方の大学が行なう駅伝が誕生しました。東京から、関東の象徴である箱根(はこね)まで、2日かけて往復(約220km)する競技です。参加資格は、関東地方にある大学に限定される、ローカルな大会なのですが、規模が大きい大会でした。これが、今では毎年の年初めの恒例行事になった、『東京箱根間往復 関東大学駅伝』なのです。

3.箱根駅伝(はこねえきでん)

 通称、箱根駅伝は、当初は、関東地方のローカルな大会で、マイナーな競技でした。しかし、徐々に、特に 第2次大戦後から、人気ある大会になりました。2日間国道の交通規制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から、いろいろな人々の協力がなければ、なかなかでき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地元の奉仕活動をする人、警察、消防、病院、自衛隊、放送局、新聞社、そして スポンサー・・・この全ての協力で成り立つのです。テレビでも、1月2~3日は、朝7時から、午後2時まで、ずっと中継します。出発点である、東京の大手町(おおてまち)では参加大学の応援が展開されます。この応援を見ることも楽しみの一つです。見る価値があります。

 箱根駅伝の特徴は、走る距離が長いということもありますが(往復220km、1チーム10人で走る)、何と言っても山の厳しい 坂道を走ら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です。 第1区から第4区は、比較的平坦な道ですが、最後の第5区は、標高約900m上り坂です。毎年ここで、英雄(ヒーロー)が誕生したり、予想もできないことが発生したりします。翌日は、今度は、一気に急な坂道を、駆け下りなければなりません。第6区を過ぎた時点で先頭を走っているチームが、優勝する可能性が高いです。

 先頭から、20分の差がついてしまったチームは、中継所で、走者が到着する前に、次の走者は、やむを得ず出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繰り上げスタート)。

20の大学が出場できるのですが、上位10チームは、翌年も無条件で出場することができます。しかし、11位以下のチームは、秋に、約40チームと、もう一度、翌年の出場権を獲得するため、予選大会に出場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今年は、91回目の大会でした。(1941~42、44~46年は、中止)これまでは、中央(ちゅうおう)・早稲田(わせだ)・日本体育(にほんたいいく)・駒澤(こまざわ)・順天堂(じゅんてんどう)大学等が、強かったのですが、今年は、私の母校である、青山学院(あおやまがくいん)が、陸上競技部創立 96年ぶりに、初優勝しました。第5区を走った選手が4位から一気に先頭に立ち、翌日も5名の走者が懸命に“襷”を繋ぎつつ、よく走りました。最終走者が、大手町でゴールインした時、全部員が涙を流しながら、監督を胴上げしました。あんなに弱かった青山学院が優勝したことは、本当に感動的なことであり、私にとっては、新年から、うれしい出来事でした。

4.宅配便(たくはいびん)

 飛脚制度が、スポーツになったものが、“駅伝”なら、ビジネスになったものが、“宅配便”・・・韓国語で、“택배편”・・・と言うことができます。日本で、近代的郵便制度が始まったのは、1875年頃だと、先程書きました。そして、近代的郵便制度は、鉄道とともに発展してゆきました。手紙・小包は、全て鉄道で運搬しました。(一部、馬車があった。走って運搬することは、無くなった)鉄道敷設率が高かった日本が、郵便普及度・利用度も高かった理由です。少しでも早く郵便物を送る為に、町の各所に、小さな郵便局を建て、そして、重要な駅から近い所に、中央郵便局を建設し、いち早く郵便物を列車に載せることができる様にしました。

しかし、鉄道輸送は、徐々に必要がなくなっていきました。その理由というのは、第2次世界大戦後、日本に自動車社会が到来した為です。特に、’64東京オリンピックを契機に、幹線道路の整備や、高速道路の建設が進捗しました。同時に乗用車だけではなく、小型ながら、性能の良いトラックが開発されていきました。そして70年代・・・ヤマト運輸という運送会社が、自動車でリレーしつつ、小包を日本全国各地まで送る方法を考案し、ビジネス化しました。夜の高速道路は、空いているので、翌日に目的地に送ることができます。鉄道では、地方(遠隔地)に送る為には、どうしても3日から4日かかることに比べれば、大変な進歩です。ヤマト運輸が、76年に、佐川急便が、78年頃に宅配便事業を確立します。そして、日本通運・トナミ運輸・西濃運輸等・・・宅配事業は、日本で拡大してゆきます。今は、通信販売(ネット販売)の商品も宅配会社が配達しているので、私達は毎日、街の至る所で、宅配会社の車を見ることができます。

 車から車へ、小包をリレーして行く様子は、150年前の飛脚を連想させますが、これは、駅伝とともに、いかにも日本的な光景だと思います。

※札幌駅・仙台駅・名古屋駅・大阪駅・・・これらの駅前には、今も、100年以上になる、当時の郵便局の建物が残っています。東京駅前にも、『東京中央郵便局』が、ありました。しかし、2000年代になってから、新木場(しんきば)へ移転しました。そして、旧い郵便局舎を記念館として残したのですが、この建物こそが、允泰さん(윤태 씨)が、3年前に行った、『KITTE』です。

 에키덴       - 히캬쿠의 정신 -

1. 프롤로그 ....히캬쿠

일본의 장거리 릴레이인 에키덴…..이 경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전에, 먼저, 이 경기의 모델이 된 ‘히캬쿠’에 대해서 그 기원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에키덴"은 세계적으로는 마이너 스포트입니다. 물론, 올림픽 종목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성대하게 행해지고 있는 인기가 있는 경기입니다. 이것은 일본인이 뛰는 것을 좋아하고, 또한, 단체경기를 좋아하는 국민성으로 인한 것 일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도 이 경기가 일본 발상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면, 에키덴의 기원(루츠)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에키덴 [ "역" 마다 "전"하다 ] ....일본어로 '駅'ごとに'伝'える....라는 뜻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실은 일본에서는 350년쯤 전에 지금으로 말하자면, "우편제도"가 생겼습니다. 요컨대, 손님한테서 맡은 편지(때로는 돈의 경우도 있다)를 조심스럽게 그리고 확실하게 지정된 곳에 보내는 제도입니다. 몰론, 당시에는 열차도 자동차도 없었고, 자전거조차 없었던 시대입니다. 당연히 사람이 뛰어서 날라야 했습니다. 당시, 중요한 가도에는 약 15킬로미터마다, "슈쿠바(宿場 - しゅくば)"라고 하는 숙박소가 많이 모였던 동네가 있었고, 거기에 우편물의 중계소도 있어서, 편지를 가지고 뛰는 사람들이 대기하고 이었습니다. 이 편지를 나르는 사람들을 "히캬쿠"(飛脚 - ひきゃく)라고 부릅니다. 히캬쿠는 차례차례 편지를 바톤릴레이 하면서 목적지까지 보냅니다. 그들 히캬쿠들은 ' 중요한 것을 전달하는 직업 '이라고 하는 프라이드가 있어서, 비가 내리는 날에도, 눈이 내리는 날에도,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계속 뛰어서 사명을 다했습니다. 300년정도 전에는 도쿄(에도 - 江戸 えど) 에서 오사카까지 5일에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2. 에키덴

그런데 "히캬쿠 제도"는 철도가 일본 전국 각지에 깔리면서 본격적으로 영국식 우편제도가 도입된 1875년쯤에 폐지됐지만, 이 히캬쿠제도를 근원으로 생긴 경기가 '에키덴'입니다. 단거리 경주의 경우는 바톤을 주고 받는데, 에키덴 경우는 원형으로 된 가늘고 긴 포목을 몸에 걸고 뛰고, 이것을 다음 주자에 넘깁니다. 이 포목을 '타스키'라고 하는데, 본래는 일본옷(키모노)의 소매를 걷는 끈이거든요. 이 타스키는 히캬쿠가 나른 편지만큼이나 귀중한 물건이라서 절대로 목적지(골)까지 날라야 하는 에키덴 주자한테는 "목숨"같은 것입니다.

에키덴 경기가 일본에서 최초 (아마, 세계최초)로 행해진 대회는 일본의 수도가 쿄토에서 도쿄로 천도됀지 50년째를 기념해서 1917년에 개최된 대회입니다. 이것은 쿄토 산죠오하시(三条大橋)에서 도쿄 우에노공원(上野公園)까지 530키로미터를 24구간으로 나눠서 뛰는 경기였는데, 많은 팀이 참가했습니다. 스타트에서 골까지 3일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그 후 뛰는 거리를 짧게 해서 ( 50 ~ 100 킬로미터정도) 각지에서 잇달아 에키덴대회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현대항, 직장대항, 학교대항, 군대항등등...여러가지입니다. (여자 경기는 훨씬 뒤에 생겼다, 1980년쯤).

그리고, 1920년에 관동지방의 대학들이 행하는 에키덴이 탄생했습니다. 도쿄에서 관동의 심벌인 하코네까지 이틀 걸려서 왕복 ( 약 220 킬로미터 ) 하는 경기입니다. 참가 자격은 관동지방에 있는 대학에 한정된 로컬인 대회이지만, 규모가 큰 대회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은 매년 년초의 년례 행사가 된 ' 도쿄-하코네 왕복 관동 대학 에키덴 ' 입니다.

3. 하코네 에키덴

통칭 하코네 에키덴은 당초에는 관동지방의 로컬 대회로 마이너 경기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특히, 제2차 대전후부터 인기있는 대회가 됐습니다. 이틀간 국도의 교통규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협력이 없으면 도저희 못합니다. 그 고장의 봉사활동하는 사람, 경찰, 소방, 병원, 자위대, 방송국, 신문사 그리고 스폰서.....등의 모든 협력으로 이루어집니다.

텔레비젼에서도 1월2, 3일은 아침7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계속 중계됩니다. 출발점인 오테마치에서는 참가대학의 응원이 전개됩니다. 이 응원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아주 볼만합니다.

하코네 에키덴의 특징은 뛰는 거리가 길다는 것도 있지만 ( 왕복 220 킬로미터, 1팀 10명씩 뛴다), 뭐니뭐니해도, 산의 심한 비탈길을 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1구간에서 제 4구간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지만, 마지막 5구간은 표고(標高) 900미터의 오르막길입니다. 매년 여기서 영웅(히어로)이 탄생하거나, 예상 못 한 일이 발생하거나 합니다. 다음날은 이번에는 단숨에 가파른 비탈을 뛰어 내려와야 합니다. 이 제6구간을 지난 시점에서 선두를 뛰고 있는 팀이 우승하는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두부터 20분 차이가 나버린 팀은 중계소에서 주자가 도착하기 전에 다음 주자가 어쩔 수 없이 출발하게 됩니다 ( 앞당김 스타트 ). 20개 대학이 출장할 수 있는데, 상위 열팀은 다음해도 무조건 출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일위 이하의 팀은 가을에 약 40개 팀하고 다시 한 번 다음해의 출장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예선대회에 출장해야 합니다.  올해는, 91회의 대회이었습니다. ( 1941 -42, 44-46년은 중지 ). 이제까지는 츄오, 와세다, 니혼체육, 코마자와, 준텐도대학등이 강했지만 올해는 저의 모교인 아오야마가쿠인이 육상경기부 창립 96년만에 첫우승을 했습니다. 제5구간을 뛴 선수가 4위에서 단숨에 선두에 섰고, 다음날도 5명의 주자가 열심히 '타스키'를 건내면서 잘 뛰었습니다. 최종주자가 오테마치에서 골인했을 때, 전 부원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독을 헹가래했습니다. 그토록 약했던 아오야마가쿠인이 우승한 것은 정말 감동적인 일이었고, 저한테는 년초부터 기쁜 일이었습니다.

4. 타쿠하이빈

히캬쿠제도가 스포츠가 된 것이 "에키덴" 이라면, 비지니스로 발전된 것이 '타쿠하이빈(宅配便)'....한국어로 택배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근대적 우편제도가 시작된 것은 1875년쯤이라고 앞에서 썼습니다. 그리고, 근대적 우편제도는 철도하고 같이 발전해 갔습니다. 편지, 소포는 모두 철도로 운반됐습니다. (일부 마차가 있었다. 뛰어서 운반하는 것은 없어졌다). 철도 부설률이 높았던 일본이 우편보급도 이용도도 높았던 이유입니다. 조금이라고 빨리 우편물을 보내기 위해 동네 여기저기에 작은 우체국을 짓고, 그리고 주요역에서 가까운 곳에 중앙우체국을 건설해서 제빨리 우편물을 열차에 태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철도수송은 점점 필요없게 됐습니다. 제2차대전후, 일본에 자동차 사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특히, '64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큰 도로의 정비나 고속도로의 건설이 진척됐습니다. 동시에 승용차뿐만 아니라, 소형이면서 성능이 좋은 화물자동차가 개발돼어 갔습니다. 그리고, '70년대....야마토운수(ヤマト運輸)라고 하는 운송회사가 자동차로 릴레이하면서 소포를 일본전국각지까지 보내는 방법을 고안하고 비지니스화 했습니다. 밤의 고속도로는 비어 있기 때문에 다음날에 목적지까지 보낼 수 있었습니다. 철도로는 지방(원거리)에 보내기 위해서는 아무리해도 3일에서 4일 걸리는 것에 비하면, 대단한 진보였습니다. 야마토운수가 '76년에, 사가와큐빈(佐川急便)이 '78년쯤에 택배편사업을 확립했습니다. 그리고, 니혼쓰운(日本通運), 토나미운수(トナミ運輸), 세이노운수(西濃運輸)등....택배사업은 일본에서 확대해 갔습니다. 지금은, 통신판매(네트판매)의 상품도 택배회사가 배달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동네의 도처에서 택배회사 차를 볼 수 있습니다. 차에서 차로 소포를 릴레이해 가는 모습은 150년전의 히캬쿠를 연상하게 하는데, 이것은 에키덴과 함께 자못 일본적인 광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 삿포로역, 센다이역, 나고야역, 오사카역...이들 역앞에는 지금도 100년이상 된 당시의 우체국이 남아 있습니다. 도쿄역앞에도 '도쿄 중앙우체국'이 이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신키바로 이전됐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우체국을 기념관으로 남겼는데, 이 건물이 바로 윤태씨가 3년전에 간 'KITTE' 입니다.